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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9일 한국과 미국 양국간의 동맹관계 재조정을 논의하기 위한 제1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에서 합의사항이 발표되었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한국의 강화된 위상과 동맹관계의 지속적 발전 등 두 가지 사항을 공동협의의 기본원칙으로 세울 것임을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양국은 한반도 안보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 증대, 연합군사능력 현대화를 통한 대북 억지능력 향상, 용산 기지의 조기 이전을 비롯한 기존 주한미군 기지체계의 통폐합, 제2사단을 비롯한 주한미군 기지조정에 있어서 연합억지능력 및 한국 안보의 약화 불허, 그리고 중장기 차원의 한미 연합지휘관계에 대한 연구를 위한 협의체 구성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발표했다.
한미 양국간의 이번 합의발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의 불안정 해소를 위한 양국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2차 걸프전쟁에서 미영 연합군의 승리가 임박해지면서 그동안 미루어졌던 북한 핵위기의 해결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북한의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 우려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한미 연합전력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을 갖고 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력재배치와 감축 그리고 소위 인계철선 역할의 포기 등을 거론하면서 한국 내에서는 미국의 안보공약 의지에 대한 우려가 커져왔다. 이 점에서 주한미군 기지 재조정에서의 대북 연합억지능력 및 한국안보 약화 불허를 명시한 이번 합의사항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이 품어왔던 미국의 안보공약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21세기에 걸맞은 전쟁수행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합군사능력의 현대화’ 논의가 포함된 것 역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현재의 한미 연합전력체제는 유사시 북한의 무력침공이 있을 경우 수도권 이북에서의 저지에 주력하다가 수주일 후 미국의 증원병력이 도착한 후에야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전략개념에 입각한 것이며, 이는 국토의 대부분이 이미 북한의 군사적 위협범위에 노출된 한반도의 전장환경을 생각할 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근본적으로 억지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기회에 한미 양국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전력만으로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지, 격퇴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강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둘째, 장기적으로 이번 합의사항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과 동북아시아 안보질서 변화에 따라 그동안 논의상으로만 그쳐왔던 양국간 동맹관계의 질적 변화를 위한 논의를 본격화시키는 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비록 시기상으로 볼 때 좋은 여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상대적 국력 신장과 한국 국민들의 인식변화 등으로 인해 어차피 언젠가 한번쯤은 겪어야 할 과정이다. 지난 50년 전 한국이 미국의 안보우산에 국가의 명운을 전적으로 의탁해야 했던 시절의 불균형적 동맹관계를 지금까지도 유지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 누구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국력향상에 따라 더 많은 역할을 맡는 것은 양국간 동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높이고, 미국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세계질서 주도에 있어서 핵심적인 동북아시아에서의 국익 추구에 있어서 부담을 줄이는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이러한 동맹관계의 질적 변화는 한국 스스로의 능력 강화 수준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적 한미관계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단순한 감정이나 자존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일시적 감정만으로 결정되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비롯한 논의를 일단 중장기적 논의과제로 남긴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 한국이 북한과 주변국가에 대한 독자적인 억지전력 및 정보전 수행능력(영상정보의 98%, 신호정보의 99%를 주한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 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자존심만을 내세우는 즉각적인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주장은 도리어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것은 향후 한국의 독자적 전략능력이 확보된 후 실현되어도 늦지 않다.
올해로 한미 양국간의 동맹관계는 50년째를 맞는다. 외견상으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동맹관계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해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 동안 한미 양국은 동맹관계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아왔다. 다행히 최근 결정된 한국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원칙 재확인 등으로 점차 그러한 우려들이 해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합의 역시 그 연장선장에서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비록 아직까지는 원론적 성격이 강하고 향후 더 많은 논의가 예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한미 양국이 이번 합의를 지금까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안정을 위해 양국간의 동맹관계가 보다 강화되는 계기로 만들도록 전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