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감사원이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는 금융권의 각종 모럴해저드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객의 상환능력을 고려한 신용평가를 통해 대출금리를 결정해야 할 은행에서는 ‘학력’에 따라 신용평점을 매겼다. 2008~2011년 사이에 신용대출이 거절된 4만4368명 중 1만4138명(31.9%)가 이 조항 때문에 돈을 빌리지 못했다고 한다.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하락시켜 이자를 더 부담시키기도 했다. 거래가 없었던 최초 거래자에 한해 한시적으로 적용했다고 하지만, 다른 기준이 없다면 학력으로 신용평점을 매긴다는 발상은 놀랍기 짝이 없다. 가장 정교해야할 금융권의 신용평점이 겨우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밖에도 은행권에서는 단기연체 후 연체금을 상환하면 신용등급을 회복시켜줘야 함에도 은행연합회에 아예 보고하지 않은 사례가 적발되었고, 기준금리가 하락하자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이자를 더 받아오기도 했다. 카드사의 경우 총부채상환비율이 100%를 초과한 신용등급 10등급자에게 과도한 월 이용한도를 부여하는가 하면, 심지어 사망자에게도 카드를 신규․갱신 발급하기도 했다. 신용카드가 개인의 신용을 대변하는 서구와 달리, 길거리에서도 현금을 주며 카드발급을 권유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실의 이면에는 바로 카드사들의 이런 주먹구구식 부풀리기 행태가 있었다. 보험사들의 경우 개인정보제공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단체실손의료보험 중복가입을 방치하였다. 보험사와 우체국 보험 간 중복가입자가 20만5천명에 달하는데도 감독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손보험의 경우 중복가입을 한다 해도 보험사들의 수입만 늘어날 뿐 계약자가 받는 보험금에는 차이가 없다. 금융업은 한번 무너지면 그 파장이 크고, 복구가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위기 때마다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부실 금융기관들을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살려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인 국민을 배신하는 영업행태를 보여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여의도로 몰려가는 사태를 빚어서야 되겠는가?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금융당국의 역량과 의지가 어떤 수준인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식의 금융감독이라면 국민의 세금으로 감독기관을 먹여 살릴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