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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5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법인세 단계 인하 방침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노 대통령은 공약으로 내걸었던 조세형평에, 김 부총리는 법인세 인하를 통한 경기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노 대통령과 김 부총리와의 첫 공식적인 의견 차이이며, 이로 인해 정부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
김 부총리는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법인세 감면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얻어지는 세원만큼 법인 세율을 인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그러한 법인세 인하가 중산 서민층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그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인 조세형평을 후퇴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입장은 노 대통령이 내걸었던 조세의 형평과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두 공약의 조화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청와대가 강조하는 분배와 재경부의 성장을 통한 경기분양 향상 중에서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을 바탕으로 그 선택의 우선순위를 불가피하게 정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현재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 전운과 유가 상승 등 세계 경제의 불안정, 북핵 위기와 SK사태로 인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불안감 확대 그리고 무역수지 적자와 물가 상승 등 여러 경기 지표들이 하락하며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지금의 경제적 상황 하에서 우리는 명목상의 조세의 형평성에 집착하기 보다는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여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본다. 형평과 분배는 경제적 효율과 성장을 전제로 했을 때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형평의 지나친 강조는 현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법인세의 인하가 서민층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 법인세의 인하는 기업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고, 국내 자본의 외국 유출을 막아 투자의 기반을 형성해 줌으로써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승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게다가, 21세기 동북아 중심국가로 도약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외국인 투자자본의 유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가 27%인데 반해, 아시아의 주요 외국 투자자본이 집결해 있는 홍콩의 경우 16%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도적 제반 요건들이 외국 투자자본 유치에 있어서 동남아 국가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잘 갖추어져 있을 때, 진정으로 많은 자본을 유치할 수 있으며, 동북아 중심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토론 문화의 정착을 강조하였으나, 이번 법인세 인하에 대한 제동은 그 첫 단추를 잘 못 단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의 법인세 인하 방침에 대해 먼저 국무회의 등에서 충분한 사전 의사 조율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토론되지 않아 상반된 입장을 보여 국정 운영에 혼선을 빚었다. 청와대측에서 일방적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보다는 정책의 당사자인 김 부총리가 수정,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더욱 담당 정부 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고, 담당 공무원의 사기 진작에도 더 좋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일부 시민단체나 공약 그 자체에만 치중하여 정책부서의 현실적 대안을 일방적으로 무시해 버린다면, 담당 공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게 되어 국정 전반에 걸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새로운 정부 집권초기일수록 정책부서가 소신있고 책임있는 행정을 수행하여야 하는데 지금 발생하고 있는 일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과거 정권들의 출범 초기에 정책 부서와 청와대와의 불협화음으로 좋은 정책들이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경험들을 교훈삼아 다시는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대내외적으로 총체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경기 활성화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고, 21세기 동북아 중심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 법인세 인하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또한, 다시는 정책 부서와 청와대와의 사전 정책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정운영에 혼선을 빚지 않아야 하며, 일부 여론이나 공약 자체에 편중하기 보다는 현실 상황 판단에 근거한 소신있고 책임있는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