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 > 논평·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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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휴전이후 지금까지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매주 1, 2차례 RC-135S 정찰기를 발진시켜, 북한전역에 대한 정찰활동 특히 북한의 통신감청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 들어와 미국은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 스커드 미사일 및 대포동 미사일 발사 가능성 그리고 북한 핵 시설의 재가동 문제와 관련하여 거의 매일 북한 원산에서 240km 떨어진 공해상에서 정찰활동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2003년 3월 2일, 북한의 MIG-29(2대)와 MIG-23(2대) 전투기 등 총 4대의 북한 전투기가 동해 공해상에서 정찰활동을 벌이던 미 RC-135S 정찰기에 15m~120m 정도 가까이 접근하여 22분간이나 그림자처럼 차단 기동 비행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북한 전투기들의 미정찰기에 대한 근접 차단기동비행은 대단히 위험하고 위협적인 무력시위이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전투기의 차단기동비행은 충돌을 고려해 100m~150m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전투기들이 화기지원(사격)레이더로 미 RC-135S 정찰기를 미사일로 쏘겠다고 조준한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의도적이고 극단적인 도발행위임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미국은 이를 심각한 도발로 규정하고 북한에 항의할 방침을 밝혔지만, 한국 국방부는 이 사건이 미군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논평할 입장에 있지 않다면서 사건 자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의 이런 처사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 국방부가 취할 행동은 이러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 어떻게 항의를 표시하고, 또한 가장 적절한 대응조치에 관하여 미국과 긴밀히 대화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 국방부는 북한 전역에 대한 미국 정찰기의 정찰비행이 과연 누구를 위해 수행되는지 조차 모른단 말인가? 이번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미국과 다른 소리를 낸다면 이번 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의도, 즉 동맹관계 와해 전략에 넘어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는 김대중 정권하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자국의 상선을 우리 영해로 침범시켜 한미간에 갈등을 유발시켰던 전략에 넘어간 적이 있지 않은가? 우리 국방부는 과거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가?
미국과 같은 우방국들과의 군사동맹 관계는 억제전략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한국전쟁이후 한미군사동맹관계는 미일군사동맹관계와 더불어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군사동맹관계 가운데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명백한 안보위협세력인 북한을 거의 50여년 이상 휴전선 북쪽에 고착시킴으로써 제 2의 한국전쟁을 효과적으로 막는 수단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 군의 독자적인 군사능력만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국방부가 북한의 미국 정찰기 위협행동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이다.
이번 북한 전투기의 미 정찰기 위협사건은, 2001년 4월에 발생한 미정찰기(EP-3)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을 재현하려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에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거나 볼모로 삼아서 직접적 충돌에 따른 부담을 안기고, 이를 통해 미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건이 보장되는 직접 대화에 응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하려는 고의적인 문제조장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예전에도 많이 있었다. 예컨대 과거 북한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직후의 대외적 비난여론을 회피하기 위해 공해상에서 활동중이던 미 정찰선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적이 있다. 이번에 발생한 북한의 미국 정찰기에 대한 위협행위도 공해상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 의도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노무현 정부가 이러한 북한의 의도적 문제조장 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영변의 5메가와트급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 재가동과 예상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재시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대북 정보전 수행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며, 이는 향후 북한의 더욱 심각한 위협행위에 대한 효과적 대비를 어렵게 하여 북핵문제 악화에 따른 대내외적 불안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시킬 것이다. 또한 동맹으로서 한국에 대한 미국내에서의 불신감을 부채질하여, 자칫 미국이 강경책이든, 혹은 유화책이든 한국의 안보를 배려하지 않고 독단적인 대북노선을 밀어붙이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이러한 위협행위가 역으로 북한측의 사이비 평화공세에 악용되는 것을 방관하는 것 역시 한국 내부의 국론분열과 한미 양국간의 갈등만 조장할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국가생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이번 공해상에서의 미국 정찰기 위협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군사적 긴장악화에 대하여 명백한 입장과 행동방침을 천명해야 한다. 북한이 지난 며칠 동안 자행하고 있는 군사적 도발행위는 지난 수개월 동안의 핵동결 해제와 더불어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며, 이러한 도발이 계속되는 이상 전쟁위협이 외세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는 북한의 강변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에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북한의 현상타파 위협을 억지하기 위한 동맹국으로서 미국과 아무런 차질없이 대북 연합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북한에 주지시켜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안보논리가 충족되지 않는 민족공조란 북한 전체주의 정권만의 이익을 보장하는 허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