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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서울 용산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북핵 사태 등에 관한 국내외 언론 보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미국측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해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 이걸 미국 언론이 문제삼으니까 한국 언론이 '뻥튀기'를 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이 좀 왜곡시키는 부분도 있는데 우리가 휘둘리지 말고 잘 대처해야 한다. 미국이 이래저래 말하면 어렵겠지만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한국 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왜 (북에) 퍼주고 싶겠느냐. 퍼주기가 아니다. 더 이상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 미국이 이래저래 말해 어렵겠지만 한국민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현재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안보적 위기 상황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현실 인식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냉전종식이후 현대판 로마제국이 되어버린 미국은 사활적 국가이익(vital national interests)과 지도자의 이념 성향에 따라 안보전략과 외교정책을 수립, 집행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가 미국이라는 뜻이다. 이 점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소위 국제법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대판 로마제국인 미국에게 북한을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듣겠는가?
사실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대 한국 불신이 그 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무현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이러한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와 동시에 북한 핵문제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똑바로 인식하고 어떻게 전쟁을 치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그 결과를 대내외에 제시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인 것이다.
북한을 압박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안보인식 또한 문제가 있다. 전쟁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방지하는 억제전략의 핵심은 적어도 두 가지 전제조건에 달려 있다. 그것은 바로 군사능력(한미군사동맹체제)과 정치적 의지이다. 사실 이것은 안보전략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어떤 국가든지 적대국과의 대치상태에서 군사능력과 정치적 의지 둘 가운데 한 가지라도 결핍되어 있을 경우, 전쟁과 같은 위험한 상태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처럼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위기상태에 있는 경우, 만약 우리가 군사능력과 정치적 의지 둘 가운데 실제로 한 가지라도 결핍되어 있을 경우, 혹은 북한이 그것이 결핍되었다고 느끼게 될 경우, 북한은 아주 위험한 군사적 대결을 시작할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북한의 계산이 무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면 그러한 대결은 곧바로 전쟁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강력한 억제력을 갖추는 것은 북한에 의한 이런 치명적인 계산이 결코 가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상황인식과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방지하는데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50여년의 군사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사활적 국가이익 -국제사회의 주권국가로서 국가의 생존을 유지하고 국민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익 -을 우리 스스로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 동맹이란 것은 목표에 대한 수단이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활적 국가이익을 스스로 독자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경우에는 한미군사동맹관계도 필요없을지 모르고, 또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사활적 국가이익을 수호할 독자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즉,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것이며, 우리가 그런 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에 대해 지나친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국내외 언론에 발표될 수 있는 민감한 이슈들(issues)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발언을 해 주기를 바란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