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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공격 개념하에서의 주한미군재편/감축론
2002년 5월 29일, 부시대통령은 미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기본 정향(orientation)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미국은 냉전시절 억지력과 봉쇄를 기본전략으로 삼았다. 그러나 새로운 위협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 지켜야 할 시민을 갖고 있지 않은 테러리스트 네트워크에게 대량보복은 소용이 없다. 대량파괴무기나 미사일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그것을 테러리스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미친 독재자들에게는 봉쇄정책이 소용이 없다...우리는 적에 대해 싸움을 걸어야 하고 적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최악의 위협이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전에 단호하게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미국이 발을 들여놓으려는 세계에서는 행동이야말로 안전을 위한 길인 것이다. 미국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부시대통령의 연설은 한마디로 미국의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s), 특히 사활적(vital) 국가이익을 수호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초개인들 및 국가들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을 가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러한 선제공격 개념하에서는 과거처럼 해외에 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확대하거나, 잠재적인 분쟁지역에 병력을 증강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군사적 위기를 인식할 경우 곧바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는 하부구조(infrastructure), 즉 공격하기 쉽도록 후방지원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인 된다. 따라서 위기가 발생할 때, 공격지점에 어떻게 신속하게 도착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중무장한 지상군보다는 기동성이 뛰어난 해군력과 공군력이 전쟁수행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예컨대 얼마전 미국이 미해군 7함대의 최전선기지로서(특히 미사일 원자력잠수함기지), 그리고 B52와 B2 폭격기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기지로서 괌섬을 사용한다는 구상을 발표한 것, 일본의 미자와(三擇) 미공군기지(F-16 전투폭격기대로 구성)를 한반도, 중국 그리고 중동 등의 위기발생시 공격을 감행하는 미국의 최전선 기지로 활용한다는 것, 그리고 기존의 구형 C130과 C5A 수송기를 대체하는 수송기로 C17을 180대 구매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선제공격 전략을 뒷받침하는 조치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한마디로 일본의 미군기지, 괌섬 그리고 제 7함대를 선제공격의 출격거점으로 삼아 위기시 군사력을 즉시 출동시킬 수 있는 체제를 갖추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이처럼 부시행정부가 해/공군력 중심의 선제공격 개념으로 전쟁수행방식을 전환하고자 하는 것은 최첨단 무기체계의 군사전략적 우위점이외에 한 가지 중요한 철학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명존중사상이다. 현대 및 미래전의 특성이 전쟁에서 인적자원(병사들의 생명)을 사용하기 보다는 물적자원(첨단무기체계)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전쟁에서 인명손실을 극소화하는데 최고의 우선순위를 둔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전쟁수행철학 때문이다. 과거의 전쟁처럼 대규모 병사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쟁수행방식은 현재 및 미래의 미국 정치지도자들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코소보 작전에서 미군기들은 지상포화를 피하기 위해 1만 5000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이에 비해 월남전에서 미군의 최저 폭격고도는 5000피트였다. 이것은 의미하는 것은 앞으로 어떠한 형태의 전쟁이 일어나든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전사자의 최소화, 또는 방지를 최우선적인 임무로 삼아야 된다는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강조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자 기피증이 미군의 작전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첨단정밀유도무기, 특히 원거리에서 공격하더라도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출 수 있는 그런 무기체계를 갖춘 소수정예의 과학군을 만들기 위해 미국은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가 주한미군 재편 및 감축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선제공격론에 따른 군사력의 재편 및 감축논의는 한반도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배비전략(deployment strategy)을 크게 변화시킬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러한 주한미군의 배비전략의 핵심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민첩한 전개가 가능하고 즉시 투입할 수 있고, 원거리 임무나 장기에 걸친 안정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군대의 위치를 조정하는데 있는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사실 155마일 휴전선 근처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북한의 군사력은 한미양국군의 조기경보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대응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 휴전선 인근에 전진 배치된 한미양국군의 지상군 병력은 북한의 기습공격에 취약성이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역으로 한미동맹군이 북한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할시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한국군이 휴전선 일대의 방어책임을 지도록 하고, 미군은 해/공군 중심의 장거리 공격력 확보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배비전략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2003년 2월 11일자 문화일보의 “韓, 휴전선 방어 - 美, 해 공군지원,” 보도 기사와 2003년 2월 13일자 조선일보의 “미백악관, 주한미군재편시사,” 보도기사). 물론 이렇게 하는데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시(특히 북한군의 기습공격시) 주한미군, 특히 미지상군 병력의 인명손실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표가 들어가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비단 이러한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미군처럼 화력과 기동력을 앞세운 군은 적군의 공격을 쉽게 받지 않을 지역에 주둔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현재 주한미군처럼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한 연계철선(trip-wire) 역할을 하기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볼 때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핵 및 생화학무기의 위협으로 인해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북한에 볼모로 작용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따라서 전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한미군은 신속배치군의 형태로 후방에 주둔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안보적 위기가 다소 완화, 해소될 때까지는 주한미군의 배비전략에 큰 변화가 없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는 행동이다. 만약 부시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실제로 재편, 감축할 경우, 한국은 대내적으로 군사안보에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연계철선” 역할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설령 북한의 군사적 침입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재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될 시점에 미군이 재편, 감축되거나, 더 나아가 철수까지 단행한다면 한국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악영향으로 사회가 대단히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미군이 철수할 경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방비를 증액해야 하는데 이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중국과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작금의 주한미군 재편 및 감축논의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대미외교를 강화해야 하며, 또한 국내에서의 반미시위가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